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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뻔겁(뻔한 겁쟁이) 2022. 6. 8.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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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책을 빌려보기 위해 도서관을 몇 번이나 드나들었지만
너도나도 예약하는 바람에 결국 1년이 지나서야 빌릴 수 있었습니다.
첫 인상은 좋지 않았습니다.
칸딘스키의 작품을 보는듯한 난해한 표지는
상을 받지 않았다면 펼쳐보지 않았으리란 확신을 주었습니다.

아쉽게도 그 인상은 마지막 장을 덮을 때가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표지보다도 난해한 책의 내용과
이해되지 않는 인물들의 선택.
게다가 묘한 궁금증만 유발한 채 사라져버리는 떡밥들까지.

개인적으로 상을 받은 작품을 좋아합니다.
수상작이 언제나 깊은 여운과 감동을 주진 않지만
적어도 실망을 시키지는 않거든요.
기본적으로 책으로 출간되어 나오는 것들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어느 정도의 검증을 거쳤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 해도 나무가 아까운 작품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너무 기대를 했나 봅니다.
저에게 한강이란 작가는 예술의 겉멋에 빠진 사람으로 보였고
그 뒤 ‘소년이 온다’, ‘흰’과 같은 작품엔
딱히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게 2017년 정도였으니, 벌써 6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두 번째 작품을 소개하려 합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입니다.

교보문고 전자도서관에서 대출했습니다.


작품엔 크게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야기를 주도하는 인물인 경하.
그리고 대학시절 잡지사에서 경하와 알게된 인선.
마지막으로 치매에 걸린 인선의 어머니.

진행을 위해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자질구레한 인물을 제외한다면
작품엔 거의 저 셋 밖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경하는 광주에 대한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더이상 돌볼 가족도, 일을 할 직장도 없어졌고
세상에 남길 마지막 작품으로 ‘유서’를 집필하던 중
오랜 시간 연락이 닿지 않던 인선에게서 문자를 한 통 받습니다.
‘지금 당장 와줄 수 있을까.’

자신이 인선에게 그 정도의 사람이었나.
어째서 그 많은 사람들 중 나에게 연락한 걸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경하는 인선에게 연락 받은 병원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인선은 봉합한 자국을 훤히 드러낸 채
침상에 누워있습니다.

인선은 프리랜서 사진작가입니다.
그녀는 ‘반드시 필요한 말만 해야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 같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사진을 그만두고 제주도로 내려가
지금은 목공업 일을 하고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게 된 이유도 그것입니다.
날이 시려 목장갑을 낀 채 작업을 하다가
그만 손가락 두 마디를 잘려버리고 만 것입니다.
인선의 신경이 말아 올라가버리지 않도록
매 시간 간호사가 찾아와 바늘로 손가락 끝을 찌르는 것을 보면
경하도 고통스럽습니다.

인선이 경하를 부른 이유는 앵무새 때문이었습니다.
집에서 기르는 앵무새에게 먹이와 물을 남겨두었지만
더는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집을 찾아가 먹이와 물을 채워달라.
경하는 인선의 집을 찾아 제주도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 제주엔 폭설경보가 내리고,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하얀 눈보라가 시야를 가득 메웁니다.

그럼에도 경하는 인선의 집을 찾아 버스에 오릅니다.
순탄하지 않은 길을 지나 인선에 집에 도착하지만
앵무새인 아마는 이미 죽어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아마가 살아 돌아와 있었습니다.
경하는 어찌된 영문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짐작가는 바가 있습니다.
인선의 어머니가 인선을 잃을 뻔 했던 그날 저녁,
인선도 집을 찾아왔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눈 앞의 아마가 혼령인 것인지
아니면 정말 자신의 착각이었는지 혼란스러운 때,
문 밖에 노크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인선이 찾아옵니다.
병실에 누워서 회복하고 있어야 할 인선이,
어째선지 잘린 손가락마저 멀쩡해진 채.
그리고 인선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제주의 학살을 겪은 어머니의 이야기.

여기까지가 대략적인 ‘작별하지 않는다’의 줄거리입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국가로부터의 폭력을 겪었습니다.
경하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현장에 있었고, 그에 대한 책도 집필했습니다.
인선의 어머니는 제주 4.3 학살의 생존자입니다.
인선은 직집적인 피해자는 아니지만
그런 어머니 밑에서 삼촌의 대체자이자 죄책감의 대상으로서 자랐습니다.
인선이 촬영하는 다큐멘터리의 주제 또한
베트남 전쟁의 피해를 겪은 사람들입니다.

불과 50년 전, 아니 30년 전까지만 해도
국가에선 ‘정의’와 ‘법 집행’이란 이름으로 폭행이 가행되었습니다.
가해자는 끝까지 뻔뻔하게 죄를 부인하다
결국 아무것도 책임지거나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그럴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국가의 의한 폭력의 잔악무도함을 새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겁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부당한 것을 견딜 수 없고
그렇기에 끊임없이 명분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국가는 언제나 그럴듯한 명분을 부여해줍니다.
애국을 위해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국가의 보안을 위해서.
명분과 당위성을 얻어낸 겁쟁이는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망설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끔찍해질 수 있습니다.
그 겁쟁이의 손끝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습니다.
피 땀 위에 세워진 나라는
여전히 더 많은 피를 요구하는 듯합니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내용 요약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주엔 작품의 등장인물인 ‘경하’와 ‘인선’, 그리고 ‘인서의 어머니’의
MBTI를 분석하는 글로 찾아오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인상깊었던 구절을 남기며 물러가겠습니다.

경하가 인선과의 만남을 떠올리던 중
그녀를 묘사하며 남긴 대사입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꿔나가는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생각해내기 어려운 선택들을 척척 저지르고는
최선을 다해 그 결과를 책임지는 이들.
그래서 나중에는 어떤 행로를 밟아간다 해도
더이상 주변에서 놀라게 되지 않는 사람들.”